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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믹스, 그래픽노블, 만화 애니메이션 리뷰및 고찰/애니메이션

슈퍼맨 레드선(2020)애니메이션 리뷰

by 괴물상자 2020. 3. 28.

주의사항!

 

본 리뷰는 슈퍼맨 레드선의 코믹스와 애니메이션의 스포일러를 다수 포함하고 있습니다. 스포일러를 신경쓰지 않는 분이 아니시면 먼저 애니메이션이나 만화 슈퍼맨 레드선을 보신 후 리뷰를 보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슈퍼맨 레드선

마크 밀러가 지은 슈퍼맨 레드선: 마크 밀러 특유의 충격적이고 독특한 소재 사용이 돋보인다.

슈퍼맨 레드선이 드디어 애니메이션으로 나왔다. 마크밀러의 그래픽 노블로 슈퍼맨의 명작을 꼽을 때 킹덤컴, 올스타 슈퍼맨, 시크릿 아이덴티티처럼 빠지지 않는 작품 중 하나이다.

물론 애니메이션은 언제나 원작 그대로 가는 것이 좋은 것만은 아니다. 필자의 예로 필자는 다크나이트 리턴즈의 애니메이션을 프랭크 밀러가 쓴 다크나이트 리턴즈보다 더 선호한다.

다크나이트 리턴즈의 애니메이션의 경우 개인적인 의견에서는 원작에서 부족하다고 느껴지는 부분을 훌륭하게 보충해주었다고 생각한다.

원작 다크나이트 리턴즈의 슈퍼맨vs배트맨은 조금 분량과 박력이 적지만 애니메이션은 이를 각색하여 훌륭한 전투장면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레드선의 경우 각색이 심해서 왜곡이 되어버렸다. 이 각색이 심하다고 하는 것은 항상 분량적인 각색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때로는 캐릭터의 행동이 대사를 하나만 바꾸어도 캐릭터의 본질적인 부분이 달라지지만 어떤 경우 캐릭터가 다른 행동 말을 해도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경우도 있다. 레드선의 경우는 사실 보기에도 바꾼 설정들이 많고 이를 통해서 왜곡되고 변질된 본질도 많다. 심한 경우 작품 내에 모순이 생겼다고 볼 수 있는 부분도 생겨버렸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좋은 재료와 조리법이 있기에 이를 잘만 손봐주면 되었지만 여기에 자신만의 독단이 지나치게 들어가 엉망이 되어버렸다.

 

작품의 가정(假定)을 뒤엎다 1:스탈린을 죽인 슈퍼맨

물론 이건 역사적 사실을 더욱 더 기반으로 했을 경우 아주 자명한 일이다. 슈퍼맨이 스탈린의 통치아래 있는데 그의 폭압으로 인하여 희생되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는데에도 불구하고 스탈린의 후계자가 되었다는 건 이상하지만 이 부분 자체가 원래 원작의 각색 허용이라고 필자는 본다.

즉 이건 현실성을 추구하는 부분이 아니다. 이 작품의 본 줄거리는 엄청난 절대적인 인물이라면 독재적인 공산주의를 성공시킬 수 있는가? 에 대한 물음이고 그에 대하여 슈퍼맨이 스탈린의 후계자가 되었다는 것이다. 즉 이 사실은 만일 가난뱅이 청소년이 방사능 거미에게 물려 초능력을 가지는 이야기가 스파이더맨이라 하면 그 가정에서 "어 잠깐 물린다고 초능력이 생기는 거미는 실존하지 않아! 그런 일은 있을 수 없어!"라고 하는 부분과 같다 즉 본작의 본질 자체를 부정하는 것과 같다.

또한 스탈린을 죽인 경우 이에 따른 캐릭터의 모순이 생겨버렸다. 슈퍼맨은 원작인 레드선에서도 역시 불살을 추구한다. 그 어떤 반동이 있더라고 그들을 죽이지 않고 자신의 무력으로 자본주의 미국을 바로 굴복시킬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이유가 슈퍼맨 자신의 불살에 대한 신념이며 이는 또한 슈퍼맨이 단순한 독재 초인이 아닌 자신의 신념 또한 초월적인 존재인 초인이라 것을 보여준다. 하지만 애니메이션에서는 슈퍼맨이 스탈린을 죽인 바로 그 시점부터 슈퍼맨은 이미 세상에 죽어도 마땅한 사람이 있다고 소수의 희생으로 다수를 행복하게 할 수 있다는 가치관을 가졌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게 한다.

즉 이 슈퍼맨은 이미 스탈린을 죽임으로서 슈퍼맨 레드선이라기 보다는 그냥 평범한 악당 독재자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이는 모두를 행복하게 하고자 하며 그 누구도 다치는 것을 원치 않는 슈퍼맨의 본질적인 가치관을 훼손해버렸으며 애니메이션 작품이 슈퍼맨 레드선이라는 슈퍼맨을 활용한 대체 역사물이 아닌 스탈린 대신 엄청난 전투력을 가진 영웅이 지배하는 대체역사물이 되어버렸다.

 

작품의 가정(假定)을 뒤엎다 2: 절대자여야 할 슈퍼맨의 부정

어떤 의미에서는 MARVEL의 왓이프?(What If?)시리즈(마블 줄거리상 기존 줄거리와 달리 이변이 생겨 어떠한 일이 벌어졌으면 어땠을까? 하는 이슈)와 닮아 있지만 왓 이프?와 달리 슈퍼맨 레드선은 현실에서의 문제를 가지고 다루고 있다.

마블의 왓이프 시리즈 중 월드 워 헐크: 해당이슈는 플래닛 헐크의 결말을 바꾸었을 때의 이슈이며 필자의 기억으로는 이외에도 월드워 헐크는 더 많은 왓이프가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더 자세한 건 나중에 월드워 헐크에서 다루겠다.

이 현실에서의 문제는 앞서 말하듯 절대자 앞에서의 공산주의의 실현 어떻게 보면 플라톤의 철인 정치(완벽하고 초월적인 인간의 개념인 철인에게 정치를 맡기자는 플라톤의 의견으로 다분히 레드선과 비슷한 맥락을 하고 있다.)가 성공할 수 있는지에 대하여 다루고 있다. 물론 레드선에서 슈퍼맨이 완전 무적인 것은 아니다. 그의 특징적인 약점인 붉은 태양빛에 의하여 한 번 패배할 위기에 놓이나 이것은 슈퍼맨의 어쩔 수 없는 약점이자 어찌 보면 원작의 결말에 대한 복선이라고 볼 수 있기에 크게 문제가 없다.

하지만 애니메이션에서는 슈퍼맨의 초인적인 능력을 부정하는 듯 한 묘사가 여러 차례 등장한다. 원더우먼에 의하여 제압당하거나 그린랜턴에 의하여 목숨을 잃기 직전까지 가는 등 원작에서의 인류와는 차원이 다른 초월적인 존재라는 느낌을 받을 수 없다.

원작을 생각하면 이 이미지들은 과연 초인에 알맞는 이미지인가? 에 대한 의구심이 든다...

애니메이션만 보게 된다면 만일 슈퍼맨이 원더우먼을 제압할 정도로 그린랜턴보다 강한 존재라면 또 다른 결말이 있지 않을까라는 의문을 오히려 관객에게 남긴다. 이는 원래 작품에서 말하고 싶은 것 즉 초월적인 존재에 의한 통치가 이루어지면 어떠할까? 라는 고민을 재미있게 서술하기 보다는 역으로 독자가 궁금하게 만드는 괴기하게 꼬인 플롯이 형성하는데 일조하였다.

각색으로 생긴 모순: 사람 죽이는 배트맨...

배트맨의 경우 어찌 보면 사람을 죽인다는 것이 아주 이상하다고만은 할 수 없다. 극 초기에 배트맨은 사람을 난간 뒤의 산성용액 탱크로 던진후에 "그에게 걸맞는 최후다." 라고 말하였으며 플래시 포인트 배트맨은 비록 가면 아래의 "알맹이"는 다르지만 스스럼없이 살인을 하고 다닌다.

아주 대놓고 사람을 죽이는 골든에이지의 배트맨.... 근데 악당의 최후가 하필이면 산성용액 탱크이다.

또 작중 말하는 불살이라는 것도 작품마다 애매하게 묘사한다. 배트맨이 소극적인 불살로 묘사되는 경우 배트맨이 살인을 하지는 않지만 방조하는 경우도 있다. "배트맨 비긴즈"가 대표적인 예시로 마지막에 라스 알굴이 전차안에서 추락해 죽는 것을 알지만 그를 구해주지는 않는다. 하지만 어떤 작품들은 예를 들어 new52의 배트맨 제로이어에서처럼 극한의 상황에도 불구하고 죽음 끝에 몰려있는 레드후드(결론적으로 죽지는 않지만...)를 구하려고 하거나 배트맨 허쉬OVA에서는 자신의 생명을 무릅쓰고 리들러를 구하려 하기도 하고 개그성이 짙은 에피소드이긴 배트맨TAS에서 조커가 위기에 놓여있자 배트맨에게 SOS를 보내는 등 적극적인 불살로도 묘사된다.

NEW52 제로이어 비밀의 도시 에서의 배트맨은 상당히 적극적인 불살로 묘사된다.

이렇게 실상 배트맨을 여러 평행우주와 미디어 믹스사이에서 본다면 의외로 배트맨의 죽음에 대한 신념은 스펙트럼이 상당히 넓다. 그렇기에 대체현실에서의 소련의 배트맨이 살인귀가 된다는 것은 어쩌면 원더우먼보다 캐릭터성에서 벗어나지 않는 아니 어쩌면 주변에 알프레드 같은 정신적인 지주 없이 오로지 복수에 눈이 멀어 자라게 된 인물이 살인귀가 되지 않는 원작이 더 이상하게 느껴진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각색이 있어도 별 문제가 없다고 생각되고 용납될 수도 있다. 애초에 배트맨의 키워드는 분노와 증오 복수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애니메이션에서는 이로 인해 치명적인 모순이 발생하게 된다. 슈퍼맨 vs 배트맨의 장면이 바로 그렇다. 이 장면에서는 붉은 태양빛을 이용하여 슈퍼맨을 일반적인 사람과 비슷하게 만들었다. 당연히 살인에 주저함이 없으므로 이 배트맨의 제 1목적은 슈퍼맨의 죽음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배트맨은 슈퍼맨을 죽이지 않고 창고에 가둔다. 원작에서는 배트맨이 불살의 신념을 가지고 있기에 이를 공산주의 체제에서 핍박받은 인물들의 고통을 슈퍼맨에게 느끼기 위해서 한 행동이다. 그러나 만약 배트맨이 살인을 한다면 현 체제에 제일 불만을 가진 배트맨이 슈퍼맨을 죽이지 않고 수 초 동안 무기도 없이 주먹질로 제압할 이유가 없다. 물론 애니메이션에서는 붉은 태양빛에 의하여 슈퍼맨이 어느 정도까지 약화되는지 정확히 언급은 되지 않지만 적어도 사람이 손으로 제압할 수 있다는 것은 폭탄 총 같은 것으로 충분히 죽일 수 있다고 자연스럽게 생각이 든다. 그렇지만 배트맨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이유를 물으면 대답할 수 가 없다. 즉 이 세계관 내에서 배트맨은 엄청난 바보이거나 그냥 플롯상 심각한 모순이다.

슈퍼맨에게 설교할 시간은 있어도 슈퍼맨을 죽일 시간은 없다.

 

사라진 인간관계와 개요들 그리고 지미는 왜...?

슈퍼맨을 마지막에 로이스 레인이 준 편지에 의하여 설득된다. 하지만 여기에서 중요한 점은 원래 다른 사람이면 받아들이지 않았을지도 모른 슈퍼맨이 로이스레인의 제안을 받아들인 것은 다름 아닌 그들 사이가 단순한 적국의 독재자, 신문기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원작의 레드선에서는 지나치게 자신의 일에만 몰두하는 렉스 루터에 의하여 실망하는 로이스 레인 그리고 자신과 슈퍼맨을 주인공으로 하는 픽션들이 언급되고 이에 심히 반발하기 보다는 "그러한 소설도 있다."라고 로이스 스스로 담담하게 생각한다. 어찌 보면 로이스와 슈퍼맨은 원작의 커플이기에 이 평행우주에서도 미묘한 감정이 흐르는 것은 각각 프라임어스(지구-0 즉 우리가 흔히 보는 디씨 코믹스의 지구)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캐릭터이기에 이렇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당연히 로이스 레인이 편지를 주는 것은 단순히 슈퍼맨을 회유하는 행동 이상의 가치가 있다. 어찌보면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의 만남, 서로 진정으로 원했던 상대방이지만 완전히 다른 길을 가고 있는 자라고 볼 수 있다. 그렇기에 원작을 보면 어쩌면 렉스루터라면 치를 떨고 아무것도 믿지 못할 슈퍼맨이 담담하게 편지를 드는 것은 이러한 미묘하고 복잡한 감정이 두 캐릭터 사이에 있기 가능했던 일일 수 도 있다. 그러나 애니메이션에서는 로이스와 슈퍼맨 사이에는 별 감정이 없으며 로이스도 렉스 루터에 대한 실망감이나 약한 적개심을 초반 외에는 잘 표출하지 않는다. 물론 애니메이션에서는 편지가 소도시로 바뀌기는 하지만 슈퍼맨이 로이스의 의견을 그냥 수용하는 장면은 납득이 가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조금 아쉽다는 생각이 든다.

좌:원작, 우:애니메이션의 동일장면의 비교, 이 부분은 심각하게 나쁜 장면은 아니였으나 개인적으로 조금 아쉬웠다...

 

사라진 인간관계로는 또 비자로와 슈퍼맨이 있다. 원작에서는 애니와는 달리 슈페리어맨이 아닌 비자로를 이용한다. 하지만 원작과 애니메이션을 좀 많이 다르다. 원작의 경우 비자로는 슈퍼맨의 죽음이 최우선 과제가 아니다. 슈퍼맨과 비자로의 결투 도중 위성이 떨어지자 콜드비전으로 슈퍼맨을 얼린 다음에 위성을 들고 떠나서 자폭해버립니다. 이 때 비자로의 유언은 "모두들 안녕 만나서 반가웠어요." 이 부분에서 슈퍼맨은 묘한 감정을 느낀다

슈퍼맨을 얼리고 위성을 처리하는 비자로

약간 필자의 주관이 강하게 들어있는 주장이지만 필자는 이것이 슈퍼맨이 최초로 자신의 실패의 가능성을 인지하고 자신에 대한 의구심이 들은 사건이라 생각한다. 슈퍼맨은 비자로를 악의 대상으로 생각하고 그를 처단하려 하였으나 자신이 처단하려는 존재는 오히려 자신 대신 세상을 지키기 위해 한 몸을 희생한다. 필자는 사실 슈퍼맨은 이러한 회의들이 쌓여갔지만 자신의 전지전능성에 대한 믿음으로 인하여 받아들이지 못하였지만 그 결정타를 준 것이 편지(애니메이션에서는 소도시)라고 본다. 비자로 에피소드는 그러한 사건이 있었고 앞으로도 있었다는 것을 암시하는 역할을 한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하지만 애니메이션에서는 원작의 비자로의 역할을 하는 슈페리어맨을 렉스루터의 매정함을 부각시키는 요소로 써먹는 것 외에는 아무런 역할을 하지 않는다. 오히려 슈퍼맨이 자본주의 미국에 대한 반감을 키워나가는 것에 도움을 주는 거처럼 묘사가 되었다.

애니메이션의 슈페리어맨과 슈퍼맨의 싸움은 렉스 루터의 비정함을 보여주는 것 외에는 특별한 사항이 없다.

 

할 조던의 경우 본작에서와 달리 그냥 훌륭한 파일럿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원작에서는 그냥 파일럿이 아니라 공산주의자들에게 고문을 받으면서 갇혀있었던 파일럿이였다. 그러기에 그는 그린랜턴으로 출전하였을 때 반드시 슈퍼맨을 죽이고 말겠다. 공산주의를 죽이겠다는 증오로 가득 찬 상태로 출전하였다. 하지만 원작에서는 이 그린랜턴과 아마존이 합세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브레이니악과 슈퍼맨에 의하여 3시간 안에 정리가 된다. 즉 위에서 서술하시다시피 슈퍼맨이 완벽한 초인이라는 것을 부각하는 장치 중 하나이며 어찌 보면 냉전시대의 공산진영의 증오로 가득찬 전형적인 인물상의 묘사 더 나아가서는 저스티스리그 더 뉴 프론트 이어 같은 작품에서 북한군진영에 추락하였음에도 어눌한 한국어로 북한군에게 싸울 필요가 없다고 말하는 할 조던의 인물상과 대비하여 아이러니가 일어나는 것을 노렸다고 볼 수 있다.

어눌한 한국어로 전쟁을 멈추라 하는 할 조던... 근데 솔직히 못 알아 먹을만하다.

즉 냉전시대와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프로파간다와 서로의 공격으로 인하여 증오로 불타는 한명의 희생자 인물상을 보여주는 것이다. 하지만 애니메이션에서의 할 조던은 한심하다는 생각 밖에 안 든다. 물론 중간에 원더우먼의 개입이 있었지만 원더우먼이 개입한 후에 슈퍼맨에게 농담 던졌다가 나가떨어지는 건 원작에서 하나의 인물상을 제시하는 그를 단순히 그린랜턴 부대의 대장1 정도의 수준으로 바꾸어버렸다.

 

원더우먼의 경우 원더우먼이 추구하는 가치에 정반대편에 서게 되었다. 원더우먼의 경우 테미스키라에 있으므로 현실세계와 가장 무관하기에 현실에 무슨 일이 일어나든 실제 프라임 지구의 히어로 상과 가장 비슷하게 등장해야 하는 인물이다. 그러나 애니메이션의 원더우먼의 행적을 보면 극의 후반부는 도저히 원더우먼이라 생각이 들지 않는 행동을 보인다. 원더우먼의 가치 중 하나는 개방과 소통이다. 아마존들의 섬인 테미스키라, 즉 이상적인 세계에서 밖의 세계와 단절을 하는 아마존들과 달리 밖의 세계가 비록 자신들의 세계보다 폭력적이고 야만적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도움의 외침을 무시할 수 가 없기에 그들과 소통하고 개방하려는 존재가 바로 원더우먼이다.

폐쇄와 단절만인 다른 아마존들과 달리 테미스키라 밖의 세계에 호기심을 가지고 더 나아가 개방 소통하려고 하는 원더우먼

하지만 애니메이션의 후반부에서 원더우먼은 그린랜턴과 슈퍼맨의 전투를 막으며 세상의 모습에 실망을 하여 데미스키라로 도피한다. 엄청난 캐릭터 붕괴이다. 차라리 원더우먼 대신 히폴리타를 넣는 것이 훨씬 자연스러울 정도이다. 본작이 아무리 평행세계라고 하여도 평행세게에서는 캐릭터가 원본의 캐릭터와 달라도 캐릭터를 날조하는 것이 아니라 왜 그러한 성향을 띄게 되었는지 그 배경이 적절히 어울러져야 한다. 가령 예를 들어 위의 플래시 포인트 배트맨의 경우 원작의 배트맨과 달리 사람을 죽이는 이유는 그가 아들을 잃었기 때문이고 부모가 자식을 잃은 아픔이 자식이 부모를 잃은 아픔보다 크기에 또 주변에서 그를 지탱해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기에 자제력을 잃고 살인귀가 되어서 날뛰게 되었다는 설명이 있다. 그러나 원더우먼의 경우 이러한 설명조차 없으며 여러 방식으로 생각해도 그 캐릭터성이 자연스럽다고 생각되어지지 않는다.

애니메이션에서의 지미올슨(좌)와 렉스루터

마지막으로 본작의 지미 올슨은 흑인이 되었다. 영화 데드풀에서 백인인 도미노도 흑인 배우가 연기했고 토르의 경우 가장 하얀 신인 헤임달 역시 흑인 이드리스 엘바가 연기하였으며 여러 가지로 호평을 받았고 필자 역시 이러한 캐스팅이 적절한 재해석과 배우들의 열연이 있으면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문제는 바로 지미 올슨의 역할이다. 원작에서는 CIA의 간부까지 된 지미가 여기에서는 뭘 하는 지 뭔 역할인지 비중도 공기고 존재감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캐릭터의 인종을 바꾼 건 다분히 지나친 정치적 올바름의 추구 혹은 블랙 토큰처럼 보인다.(블랙 토큰이란 할리우드 영화들이 주로 백인 위주로 캐스팅 되어서 혹여 이에 대한 비판을 막기 위하여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흑인 캐릭터를 무리수로 집어 넣을 것을 의미) 차라리 이런 식으로 할 바에 지미 올슨을 없애고 원작의 다른 중요한 부분에 더 신경을 써주었으면 더 나은 작품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자본주의 만만세?

그렇다면 원래 슈퍼맨 레드선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사실 작품의 주제를 묻는 것 자체는 우문이다. 사람마다 작품에서 보는 시선이 다르고 가치관이 다르고 경험이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만약 작품을 미디어 믹스로 훌륭히 옮겼다면 어떠한 사람이 보든 원작의 주제와 미디어 믹스에서의 주제는 크게 벗어나는 일이 있지는 않다. 물론 스티븐 킹의 미스트와 같이 원작과 판이하게 다른 줄거리로 인하여 오히려 원작자에게서도 호평을 얻고 원작보다 평가를 높이 사는 경우도 있다.

영화 미스트는 자신의 소설을 기반으로 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은 스티븐 킹이 자신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였음에도 영화의 각색에 대하여 극찬을 하였다.

하지만 이는 미디어 믹스에서의 각색이 작품을 보면서 대부분의 사람의 느끼려고 한 점이나 원작자의 의도를 잘 파악하고 강화한 예외적인 경우이다. 그렇다면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필자의 생각을 말해보겠다.  필자가 생각한 슈퍼맨 레드선의 주제는 진짜 구세주, 진짜 슈퍼맨의 탄생 조건이다. 레드선의 슈퍼맨의 경우 원작의 슈퍼맨과 거의 다름이 없다. 그렇지만 공산주의 독재국가에 통치하에 자라 결국 브레이니악과 다름이 없는 독재자가 되어버렸다. 그렇다면 슈퍼맨의 탄생 조건의 자유 자본주의 사회라고 할 수 있을까?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고 생각한다. 필자가 생각하는 슈퍼맨의 탄생조건에서 자유 자본주의 사회는 필요조건이라고 생각한다. 즉 자유 자본주의라고 하여도 슈퍼맨이 탄생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필자가 이리 생각하는 이유는 또 다른 평행우주 이벤트인 플래시 포인트 패러독스이다. 여기에서 슈퍼맨은 시골 스몰빌이 아닌 메트로폴리스에 착륙하게 된다. 그리고 이 슈퍼맨의 운명의 실험쥐이다. 이 평행우주에서 자란 슈퍼맨은 실험쥐처럼 사육되었으며 해당 이벤트의 후반부에서는 울트라맨과는 다른 또 다른 무서운 슈퍼맨을 보여준다. 단순히 실험 사육에 대한 복수심이 아닌 제대로 된 교육이 없고 그 누구도 정신적으로 함께 해주지 않은 슈퍼맨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플래시 포인트에서의 슈퍼맨은 어쩌면 선량한 사람이라도 좋은 부모와 교육이 없으면 얼마나 무섭게 변하는 지 보여준 것일 수도 있다.

결론적으로 필자가 말하고 싶은 슈퍼맨의 탄생조건은 자유 사회 아래에서 바른 부모 밑에서 올바른 도덕적 신념을 가지고 자란 자가 바로 슈퍼맨의 탄생조건이라고 본다. 레드선에서 역시 공산주의는 실패할 수밖에 없음을 보여주지만 미묘하게 자본주의가 절대적이거나 최선이라는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원작의 후반부에 나온 득표율 101%라는 비정상적인 수치로 당선된 대통령 렉스루터의 이야기 역시 자본주의 진영의 영웅이라기보다는 뭔가 이상하고 찜찜한 구석을 남긴다. 즉 자본주의가 절대적이지 않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애니메이션에서는 렉스루터를 마치 영웅처럼 보여준다. 자본주의 진영의 영웅이자 천재로 신을 이긴 인간정도로 치켜세우는 것을 끝이 난다. 만일 원작처럼 결말을 넣었다면 그래도 루터의 영웅화로 끝이 나는 것이 아니어서 무조건적인 자유 자본주의의 찬양으로만 볼 수 없지만 애니메이션은 그것조차 넣지 않았다. 즉 원작의 주제를 훼손하여 프로파간다로 왜곡해 버린 면이 없지 않아 있다. 

그리고... 결말의 삭제

 

필자의 주관으로는 슈퍼맨 레드선에서 제일 좋았던 점은 결말이였다. 원작의 결말에서는 렉스루터에 의하여 인간의 손으로 번영한 인류가 결국 붉은 태양으로 멸망하게 된다. 이를 루터 가문 중 하나인 엘 가문의 후손이 밝히지만 그의 주장은 무시된다. 결국 지구는 종말 직전에 오고 조르 엘과 라라엘은 결국 자신의 아들만큼만은 살리기 위하여 로켓을 준비한다. 당연히 이 아들의 이름은 칼 엘이고 이 칼엘은 시간을 거슬러 1938년 소련의 농장에 떨어진다.... 즉 이 작품은 무한 루프라는 것이다. 결국 후손에 대항하는 선조, 인류의 멸망은 레드선(붉은색의 아들(REDSON))인 슈퍼맨이 아닌 붉은 태양(RED SUN)이라는 여러가지 아이러니를 남기며 이야기가 끝난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패널은 작품의 시작이 아니라 끝을 의미하였다. 

하지만 애니메이션은 과감하게 이를 삭제하였고 그냥 렉스 루터가 슈퍼맨을 이겼다는 것을 끝내버렸다. 여러가지로 생각할 점이 많은 어찌보면 작품의 제일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결말부를 지나치게 생각 없이 삭제해 버렸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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